답사지소개

  • 남산(서울 조망)
  • 사직단
  • 광화문/경복궁
  • 종묘
  • 동대문(흥인지문)
  • 낙산공원(한양성)
  • 사직단
  •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 1-48
  • 답사항목 사직단
  • 입장료 없음
  • 관람시간 제약없음

사직단 답사지 설명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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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도착한 곳은 바로 사직단. 사극에서 ‘종묘사직(宗廟社稷)’이란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보셨지요? 조선시대에는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종묘사직이 망한다는 말로 비유할 만큼 종묘와 사직은 국가에서 중요한 장소였다고 합니다. 답사단 리더 조성호 선생님의 설명과 함께 사직단의 자취를 따라가보세요.
사직단? 사직공원?
현재 사직단보다는 사직공원이라는 단어가 익숙한 것이 사실입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성역이었던 사직단 일대는 일제강점기에 공원을 조성한다는 구실 아래 훼손되기 시작했답니다. 사직단의 위엄을 격하시키기 위한 의도였지요. 8·15 광복 후에도 사직단의 수난은 계속되어 사직단 정문이 도로확장공사 때문에 본래의 위치에서 뒤쪽으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산책객들의 휴식 공간이 아닌, 원래 그 소중한 이름 ‘사직단’으로 더 익숙하게 불려지길 바래봅니다.
풍년을 기원하며
사직단은 토지신과 곡식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입니다. 토지신을 위한 사단(社壇)은 동쪽에, 곡식신을 위한 직단(稷壇)은 서쪽에 있습니다. 제단의 형태가 네모난 이유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동양의 우주관에 의한 것이라고 하네요. 단 위에는 각 방위에 따라 황색, 청색, 백색, 적색, 흑색의 다섯 가지 빛깔의 흙을 덮었다고 합니다.
악귀를 쫓는 빨간 문
사직단은 두 겹의 담장 안에 둘러싸여 있는데, 담장의 사방에는 붉은 칠을 한 홍살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역임을 표시하는 문으로 알려져 있는데 악귀를 쫓는 기능도 한다고 하네요.
홍살문이 지키고 있는 사직단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든든해짐을 느꼈답니다. 우리 조상들이 만든 건축물을 보면 내면에 모두 뜻깊은 지혜가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
선조들의 마음을 디뎌가며
사직단의 바닥에는 얇고 넙적한 돌들이 깔려 있는데, 박석이라고 부릅니다. 다음 답사지인 경복궁을 비롯한 고궁에서 쉽게 볼 수 있지요.
크기가 일정치 않으며 표면도 울퉁불퉁한 박석을 바닥에 깔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이유는 왕이 행사에 참가 시 건물 안에서 밝은 뜰 위에 서있는 신하들을 보게 되는데, 땅에 네모 반듯한 돌들이 깔려 있으면 눈이 부시므로 울퉁불퉁한 박석에 의해 빛이 분산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네요. 두 번째 이유는 당시 가죽신을 신은 관원들이 미끄러운 바닥에서 불상사를 겪지 않도록 고려한 것이라고 합니다.
박석 위에 박혀있는 둥근 쇠고리도 발견할 수 있는데, 차일고리라고 부릅니다.
중요 행사나 의례가 열리면 관료들이 장시간 햇볕과 비를 피해 모여있을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차일고리에 차일(천막)을 쳤다고 하네요.
얼마나 땅에 단단히 박혀있는지, 답사단 친구들이 열심히 잡아당겨도 꿈쩍을 하지 않습니다.
사직단 내 홍살문 안쪽은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비상답사단은 미리 촬영 예약을 했기 때문에 특별히 제단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답니다.
선조들의 소망이 서린 사직단 앞에 선 기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되겠지요?
사직단 답사 후기

사직단, 사직단 관련 정보

1.사직단(社稷壇)

지정번호 : 사적 제121호
시대 : 조선시대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사직동 1-28

종묘와 함께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 조선을 세운 태조가 한양에 수도를 정하고, 궁궐과 종묘를 지을 때 함께 만들었다. 토지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사단은 동쪽에,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직단은 서쪽에 배치하였으며, 신좌는 각각 북쪽에 모셨다.
제사는 2월과 8월 그리고 동지와 섣달 그믐에 지냈고,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나 가뭄에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 그리고 풍년을 비는 기곡제들을 이 곳에서 지냈다.
1902년 사직단과 사직단의 임무를 맡는 사직서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일본인들은 우리나라의 사직을 끊고 우리 민족을 업신여기기 위하여 사직단의 격을 낮추고 공원으로 삼았다. 1940년 정식으로 공원이 된 사직공원이 옛 사직단의 자리이다.

2.사직단 정문

지정번호 : 보물 제177호
시대 : 1395년(태조4) 초창, 18세기 말 중건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사직동 1-38

태조 3년(1394) 사직단을 지을 때 함께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렸다. 그 뒤 숙종 46년(1720) 큰 바람에 기운 것을 다시 세웠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미루어 임진왜란 후에 새로 지은 것으로 짐작한다. 지금 있는 자리는 1962년 서울시 도시 계획에 따라 14m 뒤쪽으로 옮긴 것이다. 전체적으로 소박한 기법과 튼튼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어, 사직단 정문의 법식과 넉넉한 느낌을 주는 건축 문화재이다.

출처 :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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