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 쌤의 테마 여행 04 - G밸리, IT 산업에서 문화 공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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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IT 산업의 메카, G밸리 히스토리

스마트 교안으로 보는 G밸리스토리

구로디지털단지의 첫 문을 열다

2호선은 항상 붐비지만 아침 출근길이라서 그럴까? 이 역에서는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온다. 1번 출구 앞, 바로 이곳이 한국산업의 산실이라고 불렸던 구로산업단지의 시작이 되는 시점이다. 물론, 지금은 이 역의 이름처럼 산업단지에서 디지털단지로 탈바꿈하였다.
그래도 공단인지라 사방팔방 눈을 돌려가면서 공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굴뚝들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찾아봤지만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디지털 32나 길을 따라 5분여를 걷는 동안 주변은 온통 먹거리 식당가 뿐이었다. 골목길 끝에 다다라 디지털32라는 큰 도로 만나자마자 오른편으로 돌아 쭉 길을 따라 걸어본다. 신기하게도 내 앞에 가장 먼저 우뚝 선 것은 고층 빌딩과 대형 마트였다. 도로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과거 공장들은 온통 오간 데 없고, 20층 높이의 최신식 고층 빌딩들만이 숲을 이루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한국 경제의 성공 신화를 이끌었던 공장터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이름을 탈바꿈한 구로디지털단지는 30년 동안이나 구로산업단지로 명성이 얻었던 곳이다. 오히려 지금의 서울디지털단지보다도 더 큰 역할을 담당했었고 그 명성 또한 대단했었다. 1960년대 산업 기반이 전무했던 우리나라는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노동집약적인 경공업을 기반으로 한 수출주도형 공업화를 추진하였다.
당시 여건이 좋지 않아,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재일교포의 자본과 기술을 유치하여 운영하고 토지 이용이 쉬우며, 노동력을 확보하기 좋은 구로동을 한국수출산업단지로 선정하였다. 당시, 구로동은 경부선과 경인선 철도가 통과하고 인천항이 가까워 공장들이 입지하기 좋은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 함께 1964년 수출산업공업단지개발조성법이 만들어지고, 한국수출산업공단이 설립되면서 수출산업공단을 조성할 수 있었다. 당시 구로구에는 수출산업공단 제 1단지가 세워졌고, 사람들은 쉽게 이를 구로 공단이라고 불렀다.
1965년 착공을 시작한 1단지는 2년 후 준공 때 그 면적이 13만 8000평에 달했고, 이듬해에 11만 9000평의 제 2단지가 준공됐다. 1973년 제3단지(34만4000평)가 준공된 이후에는 섬유.봉제 산업 등이 우리나라 제조업을 이끌었다. 신기한 것은 1970년부터 1973년까지 가발 산업이 섬유 산업과 더불어 1~2위를 다툴 정도로 주요 산업이었다는 점이다. 구로산업단지가 고도의 성장을 이루고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저렴한 노동자들의 임금과 풍부한 노동력, 그리고 정부의 수출 지원 정책과 더불어 세계적인 공업 구조에서의 분업 효과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 중화학 공업 수출 육성 정책으로 전환하였다. 이에 따라 연관 효과가 큰 철강, 기계, 조선, 전자, 비철금속, 석유화학 등이 6개의 전략 산업으로 집중 투자되었다. 물론, 1980년대까지 구로공단은 계속 성장하였지만,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섬유에서 조립금속업종으로 산업의 순위가 바뀌게 되었다. 1985년 노동력 착취로 인해 ‘구로동맹파업’ 사태가 벌어지고, 이후 임금상승과 3D 업종 기피현상의 확산 및 자본집약적 산업으로 변화되면서 구로공단은 침체기를 겪게 된다.

디지털산업단지로의 새로운 도약

2000년 12월 14일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탄생일이다. 그동안의 구로산업단지라는 이름을 버리고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에 걸맞게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고층빌딩, 즉 아파트형 공장으로 새 옷을 갈아입고, 각 단지별로 특화된 산업을 발전시켜 나가게 된다. 1~3단지 대규모 빌딩들도 채워지고 있다.
제조업 공장과 굴뚝으로 가득 찼던 모습을 이제는 찾아볼 수조차 없다. 특히 아파트형 공장은 1999년 4개, 2001년 5개, 2003년 9개, 2005년 29개가 지어지면서 급속히 늘었다. 이후에도 2007년 13개, 2009년 18개, 2010년 14개가 준공됐다. 구로디지털단지역을 끼고 있는 1단지는 IT 및 소프트웨어산업 특화지구, 가산디지털단지역을 양분하는 2단지와 3단지는 각각 패션·기업지원 서비스지구,연구개발·생산복합지구(IT·메카트로닉스·정밀기기 등)의 기반제조업 특화지구로 형성되었다.
현재 서울디지털단지에는 11,000여 개 IT 정보통신업체와 패션업체가 입주하고 있다. 공장 터에도 첨단 패션몰, 인텔리전트 빌딩, 첨단 아파트형 공장들이 즐비하다. 이 중에서 약 80%가 가동 중이며, 나머지는 현재 건설 중에 있다. 60~70년대 우리나라 총생산의 약 10%를 차지했던 생산액이 현재는 그 비율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 디지털 단지에서 주로 생산되는 제품은 전기 전자와 섬유 의복으로, 그 비율이 74%가 넘는다. 그 중에서도 전기전자 산업의 비중은 약 51%로 총생산의 절반이 넘는다. 이렇듯 첨단산업단지로 이 지역이 새롭게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도권으로 열린 길, 사통팔달의 교통 요지

서울디지털단지는 행정구역상으로 서울시 구로구과 금천구에 포함된다. 광명시 철산동까지 포함되었던 과거의 권역과 비교해 볼 때 지금은 서울만 포함되어 약간 축소되었다. 구로구 구로동에는 1단지가 있으며 구로디지털단지로 불린다. 금천구 가산동 일대에는 2단지와 3단지가 있으며 가산디지털단지라고 불린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변하기 이전 구로산업단지가 들어선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정치적 요인, 투자 및 개발에 대한 경제적 요인, 그리고 풍부한 노동력과 교통의 편리성 등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어떠한 이점이 있을까? 정부의 정책적인 요인과 집적의 요인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또 하나의 좋은 점이 있다면 교통의 편리함이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경부선과 경인선이 지나는 철도 교통의 요지이고, 인천항과 부산항으로 연결되어 있어 해외 수출에 유리하다. 이뿐만 아니라, 1번 국도와 서해안 고속도로, 공항 고속도로, 외곽순환 고속도로의 접근성이 뛰어나다. 지하철은 구로디지털단지역, 남구로역, 가산디지털역(1,7호선 환승역), 대림역(2,7호선 환승역), 독산역 등이 있어 어느 지역에서든지 접근성이 뛰어나 근로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