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촌을 여행한다면 ‘북촌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북촌이 있으면 남촌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가질 만하다. 북촌이라는 이름은 조선 말기 황현이 쓴 역사책 『 매천야록 』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 부르며 노론이 살고 있고 종각 남쪽을 남촌이라 하는데 소론 이하 삼색이 섞여서 살았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북촌은 권세 있는 양반가들이 살았던 곳이고 남촌은 관직에 오르지 못한 양반이나 하급 관리들이 살았다는 것이다. 북촌 3경으로 가는 길 이제부턴 잠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발걸음도 재촉하지 않고 조선 양반인 양 팔자걸음으로 걸어본다. 좁은 골목길 사이로 쭉 삐져나온 한옥의 기와들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다.

북촌로 오른편의 가장 큰 볼거리는 북촌 3경이다. 한옥 골목 끝자락의 언덕에 다다라서 남쪽으로 바라보면 한옥에서부터 고층 빌딩, 남산타워까지 이어지는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으로 들어와 바깥세계를 보는 듯하다. 이 곳에는 최근 보수 공사한 한옥들이 많아 현대화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담벼락 색이 바래고 넝쿨로 둘러싸인 한옥 한 채가 유난히 마음을 사로잡는다. 신기한 것은 이곳에 체험 온 사람들이 이 집과 담벼락은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튼 나머지 7경을 보기 위해 다시 내려가는 길에 부드러운 곡선의 한옥 지붕과 처마가 계속 눈에 들어온다. 너무 빠르게 재촉하면서 직선과 같이 살아 온 인생에 한옥의 부드러운 곡선이 일상의 찌든 삶에 잠시나마 위안을 준다.

3경 코스를 탐방한 후 왼편에 위치한 나머지 5경을 보기 위해 북촌로를 건넌다. 건너자마자 찻집과 한옥이라는 갤러리가 눈에 들어온다. 올라가는 사람들과 내려오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만남의 장소인 듯 많이 사람들이 오고 간다. 사실 체험을 하면서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오른편에는 3경만 있는 줄 알고 1경과 2경을 빼 놓고 말았다. 3경을 제외하고 나머지 7경은 왼편에 있다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다시 한번 지도를 보니 1경과 2경은 북촌로 오른편 거의 끝에 붙어 있었고, 잘 보이지 않아 빼놓고 말았다.

북촌 안내도를 받아 들고 올라가다보면 삼거리에서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지만 관광 안내원들이 자세히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이내 자신이 갈 방향을 결정하고 돌아선다. 외국인들에게만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내국인에게도 참 친절하게 잘 알려준다.
먼저 5경과 6경, 7경을 보기 위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갔다. 5경과 6경은 같은 골목에 위치하고 있지만 5경은 아래에서 위로, 6경은 위에서 아래로 보는 한옥마을의 풍경이 서로 달라 같은 골목길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에 온 듯한 느낌이다.

사실 북촌 한옥이 있는 범위가 적어 작게만 느껴지지만 경북궁과 덕수궁 사이로 그 규모가 107만여 ㎡에 달한다. 가회동에서부터 계동, 삼청동, 재동, 팔판동 일대를 포함한다. 뒤에는 백악산과 응봉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남산이 있어 풍수지리로 볼 때 명당 중 명당이다. 생각을 많이 하면서 북촌을 걷는 사람들은 가끔 이런 질문을 한다. "북촌은 양반 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양반들만 살았다는데 한옥이 이렇게 작았나요?" 북촌 한 바퀴를 돌면 한옥들이 정말 30평 아파트 크기 남짓하게 다닥다닥 붙어있다. 양반 가옥으로는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성공한 양반이 살았던 가옥이 이렇게 작은 한옥들로 이어진 것은 무언가 큰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사실, 북촌은 일제 초창기인 1920년대까지 별다른 변화를 겪지 않았다. 하지만, 1930년대부터 서울의 행정 경계가 새로이 확장되면서 도시는 새롭게 변모하게 된다. 북촌의 양반가옥들은 사라지고 작은 규모의 한옥들을 집단적으로 건설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지금의 북촌 한옥 마을은 그 당시 지어진 것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 양반 가옥과는 거리가 멀다. 일각에서는 일제의 의해 계획된 것이라고 해서 북촌의 변형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현재의 북촌 한옥은 우리나라 전통적인 한옥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중부지방답게 'ㅁ'자형과 'ㄷ'자형의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북촌 5경 언덕을 따라 오르면 정상이 6경이다. 6경에서 다시 한번 서울을 담는다. 많은 여행객들이 이곳에서 자신의 모습을 담기 바쁘다. 북촌 한옥마을의 여행객들을 크게 네 부류로 나눠볼 수 있다.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인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그 표정으로 다시 한옥을 바라보는 연인들, 3명이 꼭 한 조를 이루어 지방색이 뚜렷한 사투리를 쓰며 여행 온 여자 친구들, 한국 문화에 매료된 듯한 일본인들과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듯한 여행객들, 마지막으로 삼삼오오 현장 체험을 나온 학생들이다. 역시나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랑의 첫 시작처럼 느껴지는 연인들이고, 그 다음으로는 3명이 다녀야만 안정적으로 느껴지는지 몰라도 여자 친구 세 명이 한 조마냥 다니는 여행객이다. 혼자 다녀서일까?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길을 묻거나 사진을 부탁한다.

북촌 7경에 올라서면 삼청동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삼청동 거리를 답사한 경험은 많지만, 전체를 담기는 어려웠는데, 북촌 7경은 삼청동 일대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포토 스팟이다. 무엇보다 삼청동 뒤에 있는 북악산과 그 산줄기가 이어져 내려와 동양화에서 그려지는 한옥의 배경이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북촌 7경에서 한옥과 어울릴 것 같지 않지 않은 풍경을 발견했다. 그것은 한옥 벽에 붙여진 80년대 공중전화박스다. 설마 일부러 디자인을 위해 공중전화 박스를 한옥 옆에 설치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여행객들은 오히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공중전화박스를 보면서 마냥 즐거워 한다. 사람들마다 느끼는 감정은 역시나 다른가 보다.

북촌 팔경의 마지막 코스는 돌계단길이다. 7경과 북촌 생활사 박물관 사이에 경사가 무척 가파른 돌계단길이 있다. 내려가기 전 위에서 보는 한옥들의 사각형 지붕과 소담스럽게 쌓인 눈이 한옥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워낙 계단이 가파르다 보니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꼭 들려야만 하는 데이트 코스가 되어버렸을 정도다. 지나치게 가파른 계단이 남자가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사고가 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위험하기 때문이다. 안전한 걸음을 위해 손을 꼬옥 잡아 주면 둘 사이가 가까워질 수 밖에 없겠다.
또한, 이 길은 가파른 것 외에도 너무 좁아 둘이 걷기도 힘들 정도다. 사실, 이 길의 묘미는 연인들이 서로 아끼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다. 하나는 이 돌계단과 그 조그만 골목 사이로 펼쳐지는 한옥의 풍경이고 다른 하나는 이 길의 끝에 다다르면 북촌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카페 거리가 펼쳐진다는 점이다. 이 카페거리가 서울 카페 명소 중 하나인 삼청동이다.

북촌 8경을 본 후 마지막으로 내려오는 길에 4경을 찾았다. 처음 회나무 앞 4경과 5경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가면 된다. 4경은 다른 포토 스팟에 비해 북촌의 색다른 면을 즐길 수 있는 마지막 코스다. 물론, 순서대로 하자면 4경 다음과 5경으로 가야하지만, 나는 대미를 4경에서 장식하기로 한다. 4경의 포토 스팟에 서면 북촌 한옥의 검정색의 기와를 얹은 한옥 지붕이 바닷가에 일렁이는 파도처럼 물결을 이룬다. 그 풍경은 한옥 마을의 백미라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북촌 4경의 풍경을 담아내기 위해 포토 스팟(photo spot)에 섰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잘 담기지 않는다. 담벼락이 가로막고 있어 한옥 지붕의 제멋을 충분히 살릴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이곳에서 나만의 포토 스팟을 만들어냈다. 열린 공간이 필요해 포토 스팟보다 높은 곳을 찾아보니 각 집집마다 올라가는 계단이 있어 그 대문 앞에 올라서니 4경이 그 빛을 더하였다. 8-3호집 대문 8-13호집 대문, 그리고 8-20호집 대문이다